서울오산고 감독vs강릉중앙고 감독, 23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라이징스타미디어] 23년 전, 현 고등학교 감독들이 양 팀 에이스로 격돌했던 일화를 꺼내본다.

1998년 9월 22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대회 결승전. 최후의 매치업까지 올라선 이들은 배재고, 강릉농공고(강릉중앙고 전신) 두 팀이었다. 이들의 마지막 한판은 야구처럼 비로 순연, 하루를 쉬어가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당시 이 대회를 공동 주최한 조선일보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라며 분위기를 띄웠다. 또, "전문가들은 배재고 차두리, 강릉농공 이정운의 활약에 우승컵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 이름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꽤 익숙하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아들이기도 한 차두리 현 서울오산고 감독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이태규로 개명해 모교 강릉중앙고 감독을 역임 중인 이정운도 현역 시절 전남드래곤즈, 강원FC, 강릉시청 등지에서 이력을 이어왔다. 차 감독은 K리그 주니어 우승,  이 감독은 금강대기 우승 등으로 지도력을 펼쳐가는 중.

고교 시절 공격적인 폭발력은 차두리가 눈에 띄었다. 전국고교축구선수권 결승행까지 5경기 4골 1도움을 폭발했다. 다만 배재고가 1998년도에는 한번도 전국대회 4강에 들지 못했는데, 조선일보는 차두리의 부진을 이유로 들며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이 경질됐고, 뒤이은 발언 파문의 충격으로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팀 비중이라면 강릉농공 이정운도 빼놓을 수 없었다.  강릉농공은 고교팀 중엔 거의 유일하게 4-4-2 포메이션을 썼다. 조선일보는 이정운을 가리켜 "게임 메이커를 맡고 있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땐 스스로 해결사를 자청한다. 100m를 11초대에 뛰는 빠른 발로 양 측면에서 올리는 센터링이 날카롭다"고 표현했다.

치열한 맞대결의 승자는? 강릉농공이었다. 신동철 당시 강릉농공 감독(현 FC항공 단장)은 "평소 실력만 발휘한다면 7 대 3 정도로 우세할 것"이라며 자신했는데, 그 말대로 됐다. 배재고가 차두리의 선제골로 앞섰으나, 강릉농공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이어 경기 종료 직전 이정운의 크로스가 상대 자책골로 연결되며 강릉농공의 극적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경기 후 MVP로 꼽힌 이정운은 "중앙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게 가장 기쁩니다"라고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황지중앙초 4학년 시절 "축구화를 주겠다"는 선생님의 유혹(?)에 축구를 시작했다던 그는 이듬해 성균관대로 진학하며 꿈을 피워나갔다.


한편 아쉽게 준우승 고배를 마신 차두리는 몇 달 뒤 고려대 신입생이 됐다. 이어 국가대표 일원으로 2002 한일 월드컵을 함께한다.

사진 제공=대한축구협회, 강원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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